저는 6개월에 한 번 편지를 씁니다. 1월에 한 번, 7월에 한 번 쓰죠. 기록에 따르면 2014년 1월부터 시작했으니 7년간 편지를 써왔습니다. 받는 사람은 6개월 뒤 저 자신입니다. 그래서 혼자 말하듯 글 쓰는 게 익숙하고 자연스럽습니다. 2020년 회고도 같은 형식으로 해보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먼 미래에 제가 읽어보리라 생각하며 오랜 친구에게 말하듯 편하게 편지 형식으로 회고했습니다.
확진자라는 표현을 이토록 자주 쓰게 될 줄 알았을까. 확진. 확실하게 진단을 받음을 의미하는 명사지. 확실하게 진단받은 사람이 몇 명이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거의 매일 초록 창을 열었어. 아침마다 일별 확진자 차트를 보며 전날 발생한 확진자가 몇 명인지 확인하지. 무엇을 알고 싶었던 걸까? 내 주위를 둘러싼 위협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그저 팔로워와 '좋아요'를 보는 듯한 심정으로 뭔가 긍정적인 시그널을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
확진자 수가 급격하게 늘어가면 거리 두기가 몇 단계인지 확인해보곤 했지. 정부는 다음 단계로 격상할까 아니면 현상을 유지할까. 단계가 오른다는 뉴스를 보면 곧장 슬랙으로 달려가 공지 채널을 열어봤어. 재택근무를 하게 되는 걸까 아니면 현상을 유지할까. 어쩌면 올해는 매일 불확실성을 마주했던 해였을지도 모르겠어. 매일 달라지는 내 주변의 위협과 일상의 변화를 마주해야 했으니까.
올해 유튜브는 내게 어떤 콘텐츠를 가장 많이 권했을까. 통계를 확인해보진 않았지만 내 기억에 '재테크' 관련 영상과 '자동차' 관련 영상이 가장 자주 추천된 콘텐츠가 아닐까 싶어.
연초부터 투자, 재테크에 대한 생각이 많았지. 아니, 뱅크샐러드에 오고부터 쭉 관련된 생각을 해왔던 것 같아. 묵혀둔 생각을 실천에 옮기기까지 1년이나 걸렸네.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던 게 사실이야. 시작할 수 있었던 건 솔직히 말해 코로나의 영향이라고 봐.
폭락한 증시를 일생일대의 기회로 여기고 투자를 시작한 주변 친구들, 일명 '동학 개미'들이 자연스럽게 나를 투자의 길로 인도했어. 회사에서도 삼성전자가 '삼만전자'가 됐으니 지금이 기회라느니 테슬라 주식으로 얼마를 벌었다는 얘기를 쉽게 들을 수 있었지.
자연스럽게 내 관심을 끌게 됐고 그쯤에 존리 대표의 영상을 본 것 같아. 여러 명언이 쏟아졌지. "부자처럼 보이려고 하지 말고 진짜 부자가 돼라", "소확행을 쫓지 마라", "우상향하는 주식 시장을 믿어라" 이 모든 조언이 내게 재테크에 대해 눈을 뜨게 해준 것 같아. 그 후로 신사임당, 박곰희, 김짠부, 둥지언니, 미주은, 똔누 같은 유튜버들의 조언을 귀담아들었지. 그 후로 연금저축, IRP, ETF, 해외주식, 금 현물 투자까지 시작하게 됐지.
지금 생각해보면 올해 가장 실수한 재정 관련 결정은 두 가지가 있어. 하나는 전세집을 구할 때 내 돈을 너무 많이 넣은 것. 아니, 대출이 되는 만큼 다 끌어왔어야지... 대출은 최대한 늦게 갚고 투자는 일찍 시작하는 게 좋은데 나는 반대로 했지 뭐야. 모아둔 돈을 모두 집에 묶어두다니 바보 같은 결정이 아닐 수가 없지. 둘째는 학자금 대출을 너무 많이 갚은 것. 아니, 대출은 천천히 갚아야 한다고! 그 돈으로 자산 배분을 해야 했어.
마냥 빚이 없는 게 좋은 거로 생각한 탓이긴 해. 신용등급을 올리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최선을 다한 것 같아. 그래도 다행이지 뭐야. 지금이라도 그걸 알고 내년에는 더 나은 계획이 있잖아?
어쩌면 재테크와는 상반된 키워드지. 자동차에 대한 관심은 테슬라를 알면서 시작됐어. 엘론 머스크가 바꿔 가는 세상을 보고 있자면 스티브 잡스가 생각나잖아. 지금처럼 애플 제품을 쓰는 것도 처음엔 잡스와 아이폰에 대한 동경에서 시작된 거지. 자연스럽게 테슬라도 동경의 대상이 됐어. 매력적인 전기차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그 조화로움을 보고 있자면 처음 아이폰을 만졌을 때가 생각나. 운전 연수를 받기 전에도 테슬라를 꼭 갖고 싶다 생각했었지.
막상 운전을 다시 익히고 쏘카로 차를 빌려 서울 근교를 드라이브하면서 차가 주는 자유로움에 감탄했어. 내 삶의 지경이 넓어진다는 걸 물리적으로 체감하니 차가 주는 가치가 엄청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 예전에는 왜 굳이 차가 있어야만 하는지 회의적인 편이었거든. 역시 사람은 경험을 해야 해. 여하튼 이런 경험이 차를 구매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들었어. 그때부터는 유튜브에 내 시간을 맡긴 거지.
테슬라 구매 비용, 유지비용, 모델3 관련된 키워드를 검색했어. 현실적으로 필요한 금액도 알아보고 유지하기 위해 내 벌이가 충분한지 계산해봤지. 차는 용기로 사는 거라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는 의견도 들었어. 그 점에서 난 용기가 부족했던걸지 몰라. 테슬라에서 눈을 돌리기 시작했거든. 다른 차를 찾다가 미니 쿠퍼(MINI Cooper)에 빠져서 시승도 하고 몇 달을 미니에 바쳤어.
그거 알아? 미니라는 말의 어원이 미니에서 나온 거? 미니스커트, 미니백 같은 표현이 미니라는 자동차에서 나온거래. 이 사실을 처음 알았던 날은 진짜 미니는 내 인생 자동차라고 생각했지. 한 단어의 어원이 되는 브랜드라니...! 엄청나잖아? 브랜드를 소유한다는 점에서 애플 못지않은 엄청난 브랜드였던 거야. 그래서 얼마면 되는데? 얼마면 널 가질 수 있겠니?
또다시 현실을 자각할 시간이 왔어. 내게 용기가 충분하지 않았거든. 재테크라는 키워드가 내 삶에 제법 녹아든 상태였고 부자처럼 보이려고 하지 말라는 존리 형의 조언이 뼈에 문신처럼 새겨진 뒤였어. 제아무리 미니라는 브랜드가 내 심장을 울린다고 해도 뼈에 새겨진 조언을 이기긴 힘들었지. 결국 나는 용기를 냈어. 지난 몇 달간 알아본 자동차에 대한 구매를 취소하기로 말이야.
사실 모든 시간을 허투루 썼다고 여기진 않아. 덕분에 좋은 채널을 많이 알게 됐지. 김한용의 모카, 차알못, 모터그래프, 차업차득, 더파크 같은 채널을 한동안 끼고 살았으니까. 앞으로 주변에서 자동차에 관해 얘기한다면 할 말이 많을 것 같아.
올해 꼽은 애증의 단어야. 올 해 새로운 팀에서 테크 리드라는 역할을 맡았었어.
사실 감투 쓰는 걸 싫어하는 건 아니야. 내가 어떤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는 기대를 담은 거잖아. 좋아. 사람들의 기대를 받는 거. 그리고 그 기대에 부응하는 과정에서 서로 알아가고 합을 맞추는 즐거움을 잘 알지. 좋아하는 성장 방식이야. 그래도 이 단어가 애증으로 남은 이유는 현실적인 문제에 있었어. 주위의 대우에 비해 단어가 주는 무게가 너무 무겁다고 느껴졌거든. 바꿔말하면 감투는 썼는데 그에 맞는 대우가 없다는 기분이었어.
물론 그런 대우를 바라고 이 역할을 맡은 건 아니지. 그런데 사람이 참 그렇다? 최소한의 대우라는 걸 기대한단 말이야. 예를 들어 내가 고양이고 내 주변 동료들이 집사라면 가끔 와서 먹이도 주고 놀아주고 해야 하잖아. 그런데 뭐랄까. 막상 분양돼서 가봤더니 아니, 집사가 집에 오질 않네? 그런 느낌인 거야. 날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지 않다고 해야 할까.
잘해보려고 많이 노력했어. 지난 7월 편지를 보면 매너리즘에 빠진 게 아닐까 하고 걱정할 정도니, 소진할 만큼 애썼던 거 같아. 감사하게도 조금씩 성과가 나왔어. 3분기를 시점으로 실험 조직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해서 상도 받았어. 그때쯤에 그런 생각을 한 것 같아. 감투를 썼으면 스스로 증명해서 보여줘야 하는 거라는 걸 말이야. 휴, 말은 이렇게 해도 솔직히 쉬운 건 아니야.
모쪼록 그런 애증의 마음도 연말쯤에 조금 수그러들었어. <팀장의 탄생>이란 책을 통해 나에 대한 조직의 무관심이 실제 무관심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거든. 나는 임포스터(Impostor: 사기꾼)가 아니고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해가는 일원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은 거지.
그 후론 스스로 가지고 있던 자격지심이랄까. 내가 테크 리드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생각도 서버 개발을 직접 하면서 많이 줄었지. 그래도 인간의 욕심은 참 끝이 없더라. 서버 쪽을 조금 알게 됐어도 모르는 게 여전히 많아. 당연한 거지. 모르는 게 있다는 사실이 내가 자격 없음을 의미하는 게 아닌데도 계속 자신감을 잃게 만들어.
이쯤 되니 그저 역할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려고 애쓰고 있었단 생각이 들어. 중요한 건 목적을 이루는 거고 역할은 수단에 불과한데도 말이야.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처럼 여전히 같은 마음이지. 나는 헤븐 조선,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어서 일하고 있어. 그저 훌륭한 테크 리드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