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수능이 끝나고 영어 학원에 등록했다. 그룹을 지어 자기소개했다. 어쩌다 보니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은 꿈도 말했다. 같은 그룹에 앉아있던 어른 한 분이 코웃음 쳤다. 그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그 어른, 올해 서른이 됐다고 했다.
2019년, 이제 내가 서른이 됐다. 카피라이터가 되지 못했다. 역시나 그 일은 정말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나보다. 어른의 말이 맞았다.
나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 문과 출신인 내가 공대를 졸업해 지금은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었을까. 쉬운 일은 아니라고 한다. 정작 이과를 졸업해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해도 이 일을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다고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코웃음 칠 정도는 아니다. 내 주위에는 문과 출신으로 나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많다. 세상에 코웃음 치며 깎아내릴 가능성은 없다.
어른의 나이가 된 지금, 한가지 다짐한다. 앞으로 세상의 모든 가능성을 존중하는 사람이 되자고.
뉴욕 여행, MoMA 투어 중에 발견한 단어. 예술은 사회적 관계를 맺기 위한 도구 중 하나로 어떤 작품에 대한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얘기하며 사회적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존재한다. 예술계에서 높은 가격이 책정되는 작품은 많은 사람의 입을 통해 이야깃거리가 생산되는 작품이다. 하나의 작품이 얼마 많은 사회적 관계를 발전시키는가에 따라 작품의 가격이 매겨지는 것이다.
⌜행복의 기원⌟이라는 책을 통해 알게 된 단어. 인간이 행복을 느끼는 이유는 생존에 도움이 되는 순간을 감지하기 위함이다. 그 때문에 인간은 생명력을 얻는데 필요한 음식을 먹을 때 행복을 느낀다. 생존에 도움이 되는 관계를 맺는 순간에 행복을 느낀다. 인간이 나약한 육체에도 불구하고 생존한 이유는 사회성 때문이기에 사회적인 관계를 맺는 게 생존에 가장 강력한 도움을 준다. 고로 관계를 맺을 때 행복을 느낀다. 종합하면 인간은 '함께' 밥을 '먹을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
작년에 싹을 틔워 올해 확실해진 단어. 사랑은 존재 이유가 되어주는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삶을 살아가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타인으로부터 그 이유를 얻을 수 있을 뿐이다. "너의 존재가 내 삶에 유익해"라는 말이 필요하다. 스스로 발견하지 못하는 이유를 타인으로부터 얻는 것이다. 이때 서로의 존재가 각자의 삶에 유익하다는 또 다른 표현이 "사랑해"다. 이 말을 듣거나 다른 표현을 통해 타인이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준다는 생각이 들 때 느끼는 감정이 행복이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서로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행복하기 위해서 서로 사랑해야 한다.
한 걸음 더 나가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라는 명제는 존재의 이유가 되어준다는 맥락에서 딱 맞아떨어진다.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 누군가로부터 존재의 인정을 받지 않아도 되는 분. 우리가 그와 관계 맺는다면 우리는 타인의 도움 없이 존재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지으심과 계획을 인정하면 우리는 존재 이유를 깨달을 수 있다.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겁니다⌟라는 책을 통해 알게 된 단어. 차별은 존재의 다름이라는 당연한 현상 때문에 타인의 존재 이유에 상처를 남기는 행위다. 우리는 모두 다양하게 또 다르게 창조되었다. 그 다름은 틀림이 아닌데 이것을 틀림으로 정의하는 것이 차별이다. 차이를 구별하여 판단하는 것. 그게 차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