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야심 차게 시작했음이 틀림없다. 1월 2일에 2018년 도서 목록이라는 노트를 만들어 둔 걸 보면. 처음엔 열다섯권 정도였다. 중간에 읽고 싶은 책을 추가해서 지금은 마흔두권이 됐다. 그중 열여덟권을 읽었다. 읽은 시기도 기록해뒀는데 연초와 연말에 대부분의 책이 몰려있다.
여덟권은 경영, 비즈니스, 스타트업에 관한 책이다. 이 중에 한권을 고르라면 <아마존, 세상의 모든 것을 팝니다>를 고르겠다. 여러 가지로 많은 영감을 얻었다. 그 외에 인문, 프로그래밍 관련 서적을 읽었다. 관심 없는 분야의 책도 꾸준히 읽을 수 있었던 건 독서 모임 덕분이다. 이름을 정하지 못해서 지금까지 이름 없는 독서 모임으로 불리는 이 모임을 통해 <생각의 탄생>, <혼자가 편한 사람들의 사랑법>이라는 굵직하고 깊이 있는 책을 읽을 수 있었다. 혼자였다면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을 책을 함께라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주로 프로그래밍 관련 스터디가 주를 이뤘다. 함수형 프로그래밍, Github 등의 주제를 다뤘다. 강의의 형식을 빌려 진행했다. 전자는 실무자를, 후자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했다. 횟수가 많은 까닭은 여러번 반복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콘텐츠를 계속 발전 시킬 수 있었다. 좋은 네트워킹의 기회도 되었다.
클래스는 드로잉, 사진이 주제였다. 드로잉 클래스는 그림을 배우고 싶어서 직접 강사를 섭외했다. 여행 중에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다. 강사분과 함께 콘텐츠를 기획하고 건물, 풍경, 음식을 그릴 수 있는 커리큘럼을 짰다. 수업을 듣는 동안에는 제법 그림 그리기에 심취했었다. 인스타도 그림으로 도배됐었다. 새로운 취미가 생기는가 했는데 지금까지 꾸준하지 않은 걸 보니 취미라고 부르긴 글렀나보다.
'배워서 남주자'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다. 강의는 그 생각의 발현이다. 강의 활동을 칭찬해주는 분들에게 종종 하는 말이 있는데, 내가 잘나서 강의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경험을 통해 조금 먼저 알게 된 정보나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는 것일 뿐이라고. 강의를 통해 오히려 많이 배운다고 말한다. 뜬금없이 이 말을 꺼낸 이유는 많은 분이 강의에 도전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스스로 보기에 사소한 지식도 누군가에겐 정말 귀한 지식이 되곤 한다.
첫 강의는 4월에 있었다. 모교인 한동대학교에서 오픈소스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있고 실무자의 경험을 듣길 원한다는 연락을 받고 강의를 하게 됐다. 처음엔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막막했다. 몇 주째 아무런 준비를 못 하고 있었다. 그러다 실제 서비스 개발에 무심코 사용하던 소스 코드 목록(package.json
)을 확인하게 됐다. 목록엔 오픈소스가 가득했고 이 소스들이 서비스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이야기 하는 것으로 갈래를 잡았다. 제목은 <일상에 스며든 오픈소스>였다.
이후 리드미를 통해 지난 경험을 토대로 문과 출신 개발자의 이야기를 몇 차례 전했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에서 진행하는 소프트웨어 일일 교사에도 참여했다. 한동대학교에서 <떠먹여주는 웹 프로그래밍>이라는 제목으로 웹 프로그래밍 기초를 다루기도 했다. 이 콘텐츠들은 실무자들이 보기엔 민망할 정도로 사소한 지식이다. 하지만 조금만 다듬어서 쉽게 풀어내면 누군가에겐 정말 귀한 정보가 된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강의를 이어오고 있다.
네번이라는 공통된 숫자가 나와 재밌어서 기록했다. 극히 개인적인 경험이라 자세한 스토리를 기술하진 않겠지만 이 숫자의 변화가 생애 주기의 변화를 의미한다고 생각하니 흥미롭다.
지난 회고를 통해 밝힌 것처럼 마플은 정말 훌륭한 경험을 안겨준 회사였다. 개발자로서 그리고 인격체로서 어떻게 성장해야 할지 방향성을 알려주었다. 개발팀은 끊임없이 도전했고 성장했다. 함께 성장하며 즐거웠다. 다만 새로운 환경이 필요했다. 극단적으로 해외로의 이직을 생각한 걸 보면 그 갈망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일상의 관성도 만만치 않았다.
관성을 극복할 수 있었던 건 주변의 조언 덕분이다. 새로운 환경으로 도전할 수 있도록 꾸준히 자극을 줬다. 몇번의 크고 작은 자극을 받고 링크드인(LinkedIn)을 시작했다. 10월엔 헤드헌터를 만났고 채용 시장에 뛰어들었다. 일곱 회사의 문을 두드렸다. 서류 전형을 통과한 뒤론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면접 볼 회사의 도메인 지식을 습득했다. 주말엔 코딩 테스트를 봤다. 면접을 거듭할수록 계속 성장함을 느꼈다. 면접에도 기술이 있었다.
면접을 거듭 진행하는 중에 세 차례 강의도 있었다. 너무 무리한 탓에 입과 귀에 염증이 생겼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을 수도 없었다. 덕분에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감사하게도 네곳에 합격했다.
최종적으로 레이니스트를 선택했다. 핀테크에 대한 관심, 좋은 사내 문화도 분명 중요한 이유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고객에게 감동을 주는 서비스를 운영한다는 게 결정적이었다.
레이니스트가 서비스하는 뱅크샐러드는 가족이 감동한 서비스였다. 사내에서 있었던 자기소개 시간에 밝힌 친동생이 뱅크샐러드를 사용하며 느낀 감동. 그 감동을 대한민국으로 확장하고 싶었다.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결해 더 나은 의사결정을 돕는다는 이들의 미션을 함께 이뤄보고 싶었다. 늘 꿈꿔오던 헤븐(Heaven) 조선을 함께 만들어가고 싶어 레이니스트로 이직했다.
2018년은 이십대로서 마지막 해였다. 비록 진정한 가치는 숫자로 측정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서른이라는 숫자 앞에서 막연하게 불안한 감정을 느끼는 게 사실이다. 갓 대학생이 됐을 땐 서른이 되면 정말 많은 것을 이뤘을 것이라 기대했다. 엄청 어른이 되어 있을 것 같았다. 사실 지금의 나는 새내기 시절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가끔 나이를 착각할 정도다. 다만 그때는 몰랐던 사실을 깨달았다. 너무 반복돼서 익숙하게 지나치는 오늘이 정말 중요한 꿈꾸던 그 날이라는 사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가 아니라 오늘이 중요하다는 사실. 그리고 이 마음으로 살아가면 행복할 거라는 사실.